이 글은 《어린 왕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생-떽쥐뻬리가 스물 세 살 되던 해부터 서른 한 살까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을 받았던 르네 드 소신느는 파가니니에 대 한 평전인 《마법사 파가니니>와 소설 〈브라질의 실비니아>를 쓴 작가로서 생-떽쥐뻬리와 우정을 나누었던 여러 여성들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생-떽쥐뻬리에 대한 자료들을 통해 볼 때, 두 사람이 가까운 연인 사이였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생-떽쥐뻬리가 털어놓은 다정하고 꾸임없는 말들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애착을 가졌으며 또 가지려고 노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그가 죽은 뒤 간행되었던 수기(手記)〈성채(城砦)〉에 「인간의 마음 속에 방벽을 부숴 버린 성채를 재건해야 한다」는 대명제가 제시되어 있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들은 흔한 연애담이라기보다는, 그다지 표명된 바 없었던 생-떽쥐뻬리의 예술에 관한 생각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초기의 편지들), 또 그의 고독의 깊이와 삶에 대한 태도들이 솔직하게 밝혀져 있다는 점에서 생-떽쥐뻬리라는 한 인간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해주는 귀중한 장소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말없이 모래 바람 속을 날으며 때로는 호전적인 무어인의 위협을 받아 가면서도 기꺼이 모험을 찾아나섰던 생-떽쥐뻬리. 밤이면 고독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상상 속의 친구에게 고통을 호소해야만 했던, 지독히도 혼자였던 생-떽쥐뻬리. 무한 허공에서 만난 죽음 앞에서 해탈에 가까운 그 어떤 자양분을 섭취하고 다시 한번 세상을,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고자 노력했던 생-떽쥐뻬리. 마치 나 자신에게 보내온 것처럼 나는 그의 글들을 읽었다. 반세기 전의 어느 진지한 삶과의 대화. 지금 여기, 고독 안에 혼자 쓰러져도 홀연히 일어나 세상과 그 안의 우울한 삶을 힘차게 껴안을 줄 아는 한 사람의 따스하고 소박한 울림이 있다. 그 울림 안에서 우리는 그를 배우며 또 한편으로 우리들 스스로를 읽는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외판원으로 다시 입사한 후 틈틈이 비행 연습을 한다.
1929년 장편소설 『남방우편기(Ourrier sub)』로 작가로 데뷔하였다.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수상, 이후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대지』는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번역·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40년에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 북부가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던 생텍쥐페리는 이 시기에 『어린 왕자』를 집필했고, 1943년 미국 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불문판과 영문판(캐서린 우즈 역)이 함께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46년 프랑스 Gallimard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35년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바탕으로 쓰였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는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 작품이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공군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194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로 지냈다. 1944년 33비행정찰대가 이동하고 이미 5회의출격을 초과하여 8회 출격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격하기로 한 7월 31일 오전 8시 반, 정찰 비행에 출격한다. 대전 말기에 정찰비행중 행방불명 되었다. 1944년 7월 31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짐작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항하여 오는 길에 코르시카 수도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해 전사하였다고 한다. 유작 "성채I(tadelle)”는 이후에 친구들이 생텍쥐페리의 녹음본과 초벌 원고를 정리하여 1948년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