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제 행복이란 꿈도 꿀 수 없는 그늘진 생활이 새로 시작된 것이었다. 해가 기울어지면 ‘올렌까’는 현관 층계에 앉아 있었다. 야외극장으로 부터는 음악 소리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예나 다름없이 들려 왔지만,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리고 아무 욕망도 없이 그저 멍하니 텅 빈 정원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밤이 오면 잠자리에 들어가서 폐허 같은 자기 집 정원을 다시 꿈속에 보는 것이었다. 음식은 마지못해 먹는 흉내만 냈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행은 이미 아무 일에도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물론 자기 주위의 사물이 눈에 띄었고, 또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그런 일에 대하여는 아무런 자신의 의견도 세울 수 없었을 뿐더러,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안톤 체호프
‘안톤 체호프’(1860~1904)는 근대 러시아가 낳은 천재적인 단편작가인 동시에 극작가(劇作家)이다. 그는 장편소설이 많은 러시아 문단에서 유일한 단편작가로서 프랑스의 ‘모파상’과 비교되기도 한다.
‘체호프’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주제(主題)를 찾고 있는 것이 특징이지만 우리는 그 평범한 생활 속에서 넓고 보편적인 의의를 지닌 인생 그대로의 본연(本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귀여운 여인’ (1898)은 주옥같은 그의 소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고 또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대표적인 단편이다. ‘체호프’는 작품에서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그지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인상(女人像)을 예술적으로 승화(昇華)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이 나왔을 때, 위대한 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네 번이나 연거푸 읽었다는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체호프’는 이 밖에도, ‘육 호실(六號室)’, ‘아뉴타’, ‘초원’, ‘골짜기’, ‘약혼녀’ 등 천여 편의 단편과, ‘갈매기’, ‘세자 매’, ‘숙부바냐’, ‘벚꽃 동산’ 등 4대 희곡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