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다른 군중들과 같이 양철 지붕의 큰 창고로 들어갔다. 비는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얼마간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자 ‘데디빋슨’씨가 왔다. 그는 여행을 하는 동안 ‘맥페일’ 부처에게 아주 공손하게 대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의 대부분을 독서로 보냈다. 그는 말이 없고 좀 우울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의 상냥함은 그가 기독교도의 의무로서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본래 말이 적고 무뚝뚝하기 조차했다. 그의 외모는 특이했다. 그는 키가 대단히 컸고 바싹 말랐으며 긴 사지는 헐렁하게 붙어 있었다. 그는 볼이 폭 패였고, 이상하게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너무나도 창백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입술만이 도톰하고 관능적(官能的)인 것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머리를 대단히 길게 기르고 있었다. 그의 크고 검은 눈은 비극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은 손가락이 크고 길어서 보기에 좋았다. 그 손은 그가 비상한 힘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가장 유별난 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억눌린 정열을 갖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상적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을 주었다. 그는 누구나 사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머셋 모옴
영국의 소설가, 극작가, 수필평론가. 의학교를 나오고 의사 면허까지 받았으나 문학으로 전향. 60년에 걸친 문단생활에서 25편의 희곡, 30편의 장편, 125편의 단편, 수많은 수필평론집 등, 기록적인 다작(多作)을 했으며 그 간결하고 유려한 문체와 한결 같이 흥미 있고 인상적인 스토리로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애독되어 온 작가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반(半) 자서전적인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과자와 맥주’ (장편), ‘비’, ‘붉은 머리’, ‘주차장’ (단편), ‘상전들(上典)’ ‘윤회(輪廻)’(희곡), ‘요약하면’(회상록) 등이다.
이 ‘비’에 대해 ‘모음’ 자신이 그의 ‘회상록’ (1962)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쓴 모든 단편소설 가운데서 ‘비’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 나는 ‘타히티’섬으로 가는 배편을 잡으려고 ‘호노루루’에 갔었다… 우리가 탄 배가 출항하기 직전에 탄 젊은 여인이 갑판위로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창녀였다. 선객들 가운데 의사 부부와 선교사 부부가 있었다. 배가 ‘파고파고’ 항구에 들어갔을 때 그곳엔 ‘카나카’인에겐 불치의 병인 홍역이 만연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폴루’섬의 항구 ‘아피아’ 당국으로부터 우리 선객들 중에 감염자가 없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우리가 탄 배와 선객들은 그곳에 입항시키지 않겠다는 통고를 받았다. 그래서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우리는 ‘파고파고’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파고파고’에서 지체한 것이 내가 ‘비’라는 단편소설을 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어쨌든 ‘비’를 쓴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작중 여러 군데에 나오는 충동적으로 퍼붓는 비의 멋진 묘사, 남양의 이상한 기후와 환경, 거기에 전개되는 이상한 인간 갈등, 미리 계산된 결말을 향하여 찬찬히 진행시키는 능숙한 화술(話術),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린 반청교도적인 주제 등이 이 작품을 ‘모옴’ 문학의 압권(壓卷)으로 만들고 있다. 창녀를 교화(敎化)하려다가 오히려 휘어 잡힌 ‘데이빋슨’ 목사가 그 일이 있었던 밤에 ‘네브래스카’주의 (밋밋한 유방처럼 생긴) 산들의 꿈을 꾸었다고 말한 것은 ‘프로이드’ 이상 심리도 한몫 낀 것으로 이야기를 더 한층 깊이 있게 해준다. 그리고 휴머니스트인 동시에 항상 인간성에 대한 초연하고 냉철한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는 ‘맥페일’ 의사는 ‘모옴’ 자신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