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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세계단편소설걸작선7

“네가 죽느냐, 그놈이 죽느냐 하는 판이다. 그놈이 있는 곳만 말하면 살려 주지.” 채찍을 들고 장화를 신은, 번지르르한 이 두 명의 사나이도 역시 얼마 뒤에는 죽을 인간이다. 나보다 좀 늦을지는 몰라도 별로 멀지는 않다. 그런데 그놈들은 서류 이름을 찾기에 골몰하고 다른 사람들을 못살게 굴어, 투옥하거나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깐에도 서반아의 장래에 대해서,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놈들의 자질구레한 행동을 보니 내게는 불쾌하고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아무리 해도 놈들과 같은 심정이 돼 볼 수가 없고, 놈들이 미친 놈으로만 생각되었다. 그 똥똥한 사나이는 제 장화를 채찍으로 치면서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민첩하고 사나운 야수와 같은 티를 내려고 모든 행동을 일부러 꾸..
“네가 죽느냐, 그놈이 죽느냐 하는 판이다. 그놈이 있는 곳만 말하면 살려 주지.”
채찍을 들고 장화를 신은, 번지르르한 이 두 명의 사나이도 역시 얼마 뒤에는 죽을 인간이다. 나보다 좀 늦을지는 몰라도 별로 멀지는 않다. 그런데 그놈들은 서류 이름을 찾기에 골몰하고 다른 사람들을 못살게 굴어, 투옥하거나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깐에도 서반아의 장래에 대해서,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놈들의 자질구레한 행동을 보니 내게는 불쾌하고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아무리 해도 놈들과 같은 심정이 돼 볼 수가 없고, 놈들이 미친 놈으로만 생각되었다.
그 똥똥한 사나이는 제 장화를 채찍으로 치면서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민첩하고 사나운 야수와 같은 티를 내려고 모든 행동을 일부러 꾸며 대는 것이었다.
장 폴 사르트르
‘장 폴 사르트르’(1905~1980)가 20세기의 사상과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는 인간을 보는 새로운 눈을 마련해 주고 격동하는 세계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써 온 사람이다. 우리가 그의 견지에 동의하건 안하건, 서구 지성의 가장 중요한 한 존재로서의 그의 위치를 아무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 작품 ‘벽(壁)’(1939)은 그의 문학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걸작이다. 그 유명한 스페인 내란(1936)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작품의 주안은 전쟁 그 자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르트르’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극한 상황 하에서의 인간의 양태에 관한 연구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자신과 그 인물들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으면서도 스토리 자체에 무리가 없고 전통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어 읽기에 매우 재미있다. 독자들은 쉽고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이 단편에서 자신의 가능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또한 ‘사르트르’의 전체상을 파악하기 위한 손쉬운 서문과 같은 역할을 해 주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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